외국인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Because Thailand!
태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이긴 한데,
태국에 살면서 불만스러운 부분에 대해 “도대체 이건 왜 이럴까?’’ 라고 얘기하다 보면 장난스럽게 돌아오는 대답이다. “태국이니까!”
Because Thailand의 상황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시간약속’이란 주제가 뒤로 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태국에 산 지 얼마 안 돼서 일어난 일이다.
같이 운동을 하다 친해진 태국 여자 아우(Auu)가 쉬는 날이 맞으면 같이 교외로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방콕의 오염된 공기를 싫어하다 보니, 기회만 되면 나가려고 하지만 혼자는 몸이 안 움직여지던 차에 이렇게 태국 사람이 먼저 다가와 준 것이 너무 기뻤다.
거의 6개월이 다 되어 가던 차였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교회의 태국 사람들이 곁을 내주지 않아 시무룩 해 있었던 때였기에 더욱 반갑기도 했다.
*참고로, 방콕에 뜨내기 외국인이 많아 1-2년 살고 떠날 사람들에게는 거의 곁을 주지 않는 편이다.
그 동안 수 차례 친구들을 잃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점이다.
하여간, 기분이 좋았던 나는 피크닉 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도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5분 전에 슬슬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 15분 전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벌써 왔나?’ 싶어서 얼른 전화를 받았는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아휴… 정말 미안한데, 나 어제 밤에 마신 술이랑 생선이 어떻게 잘못 됐나봐… 도저히 아파서 못 가겠어.”
정말 짜증이 솟구쳤다. 어제 술 마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운동 끝나고 집에 같이 돌아가며 “너 혹시 과음하고 내일 못 나오는 거 아니지?” 라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하더니 결국엔 약속 15분 전에 펑크를 낸 것이다.
화는 났지만 아프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아픈 목소리로 계속 미안하다, 혹시 2시로 약속 미루면 어떠냐 하는데, 뭐 아픈 사람 끌고 가서 눈치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해서 ‘됐다, 괜찮다, 오늘만 날은 아니지 않냐’ 며 사람 좋은 척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인스타그램 메인에 그 애의 스토리가 최신으로 뜨길래 들어가 보니, 아프다고 한 날 저녁에 다른 친구들이랑 또 차려 입고 어딜 가서 한 잔 하고 있는 영상이 뜨는 것이다. 그 새 나아서 팔팔해 진 건지 뭔 지. 그냥 상종을 말아야 할 애구나 앞으로 안 만나야겠다 하고 씁쓸하게 관계정리를 해 버렸다.
다음 날 동료에게 이 얘기를 해 주니, 그게 뭐 대수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하이고 15분이면 양반인 줄 아세요. 저는 약속 장소 가서 30분 기다렸는데 그제서야 못 온다고 연락 온 적도 있어요. 심지어 그냥 친구도 아니고 썸남이었구요. “
얘기 꺼낸 내가 머쓱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더 심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친구 사이의 약속만 가볍게 여기는 줄 아나?
비즈니스가 걸린 문제여도 늦는 건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에 벌써 두 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이사 할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기로 하면 항상 기다리는 건 내 쪽이다. 미안하단
말을 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인터넷 설치, 에어컨 청소와 같이 구매하고도 방문을 기다려야 하는 서비스의 경우, 그 날 하루는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약속을 잡으면 안 된다. 온다고 하는 시간에 절대 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보다 일찍 오는 일은 없다.)
내가 아는 한 분은 태국 지인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아 한국 사업체를 정리하고 태국으로 오기로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척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 이미 사업체도 정리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게 생겼으니 속이 타 들어가던 사장님이 한 소리 했더니 “미스터 김은 뭐가 그렇게 급해요? 그렇게 해선 태국에서 장사 못 해요.” 라고 타박만 들었다고 한다.
나 참,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교회에서 태국 사람들이 구성한 밴드에 싱어로 가끔 노래를 부르는 나는, 그들의 단체대화방에 들어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연습하는 날이면 모이기로 한 시간 정각에 대화방에 계속 메시지가 온다.
“미안, 나 지금 가고
있어.”
“와 차가 엄청 막히네. 곧 도착해.”
매주 같은 패턴이고, 한번도 먼저 도착하는 법이 없다. 결국엔 30분씩 늦게 시작하는 건 기본이다.
더 웃긴 것은 태국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 약속을 안 지키다 보니, 외국인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외국인 직원의 비자 연장이 필요하면 단체로 이민국에서 모여 한꺼번에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때가 되면 항상 아침 8시 30분까지 오라고 한다. 그 시간에 가면 바보다. 이런 일이 처음인 게 분명한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없다. 전화해도 담당자도 오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는 9시까지 모이면 되는데 혹시라도 누구 하나 늦을까 봐 시간을 30분 앞당겨 말한 것이다. 몇 번 겪고 나니 절대로 오라고 한 시간에 안 가게 된다.
한국사람들 시간 개념을 보고 ‘코리안 타임’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그렇게 항상 늦는 사람이 있으면 타박을 주거나 눈치를 주고 불이익이 가게 하는 반면, 여기는 나라가 더워서 그런 지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 ‘늦으면 좀 어떠니~’ ‘뭐가 그렇게 급해~’ 라고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급하게 물건을 시킬 일이 있으면 직접 매장에 가는 것이 좋다. (배달 선호 시간을 선택해도 절대 그 때 오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서양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품질 보장은 물론 언제나 시간을 지킨다. 융통성 부분에서도 서양인 쪽이 좋다. )
태국인 여자친구를 사귈 사람이라면 이 부분은 꼭 감수하고 넘어가야 하니 만나기 전에 미리 각오를 하자. 아니면 그냥 본인도 늦게 나오는 게 좋다. (어차피 늦게 나와도 화 안 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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