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환경오염을 걱정해 분리수거가 철저히 생활의 일부가 된 나라는 없다.
환경 보호를 위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버리는 만큼 돈을 내고, 아파트마다 분리수거를 위한 갖가지 쓰레기통이 마련되어 있다. 누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어느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 지 철저히 지켜서 버린다.
하지만 그 대단한 노력이 무색하게 느껴 질 정도로 외국에서의 분리수거 실태는 처참하다.
지금까지 한국 바깥에서 살아 본 나라는 대만, 미국, 태국인데, 모두 대형 쓰레기통에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때려 넣는다. 놀이공원이나 국립공원에 가면 Recycle 이라고 적힌 초록색 쓰레기통도 있긴 있지만, 거의 형식에 불과할 정도다.
처음 태국에 와서 너무나 놀랐던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닐봉지(Plastic Bag) 사용량이다.
작은 테이크아웃 음료수를 사도 얇은 비닐봉지에 담아 주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계산대에서 물품 종류별로 봉지를 달리하여 물건을 담아 준다.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버섯을 스티로폼 접시에 담아 랩으로 포장하여 판매를 하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개를 사더라도 봉지에 빨대까지 친절히 담아 준다.
여러가지 물건을 함께 샀을 때는 ‘여기는 비닐봉지를 돈 안 받고 주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건 하나를 사는 데도 묻지도 않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아, 봉지에 넣지 않아도 돼요’ 라고 말했다. 다음에도 물건 하나를 사고, 돈을 내려고 지갑을 찾는 중에 이미 비닐봉지에 물건을 넣어버린 후여서 그냥 물건을 받아버렸다.
어느새 부턴가 나도 말하는 게 귀찮아 져 버려서, 그냥 주는 대로 받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집에 쌓여가는 쓸모없는 작은 비닐봉지가 이곳저곳에서 굴러다니고, 결국에는 큰 비닐봉지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작은 비닐봉지들을 담아 버리기까지 했다.
받으면서도, 버리면서도 죄책감이 든다. 안 쓰고 싶은데도 이미 생활문화가 이렇게 고착되어 있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환경오염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크게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좋든 싫든 제도가 고착화되어 있으니 분리수거가 생활화 되고,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태국에서는 음식물쓰레기든 생활 쓰레기든 한데 모아 던져버리면 되기 때문에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어떤 쓰레기를 버렸는 지 보고할 필요도 없으니 누구의 쓰레기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밝혀 낼 수 있는 구석이 없다.
태국의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에 개탄하는 외국인들은 언제나 ‘마이 싸이 퉁 (봉지에 넣지 마세요)’을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다. 기초적인 태국어도 못하는 외국인이다 하더라도 환경오염에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마이 싸이 퉁’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비닐봉지에 담을 지 물어보고 안 물어보고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이미 물건을 담아 버린 뒤,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시 물건을 빼야해서 일하는 사람을 번거롭게 해야 한다. 내가 빼서 다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서로 어색해 지거나, 쓰지도 않은 봉지를 그냥 버리는 것을 본 뒤로는 이미 사용된 비닐봉지는 그냥 받는다.
제약과 규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느끼게 된 것은 최근에 태국에 일어나는 변화 때문이다. 거의 5분 간격으로 하나씩 볼 수 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경영진이 최근 지구 온난화 개선과 지속가능한 환경 만들기에 앞장서기 위해 ‘비닐봉지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 캠페인으로 인해 얼마전부터 계산 시 ‘봉지에 넣어 드릴까요?’ 라고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앞으로 7 Value Card 라는 것을 만들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10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제도도 만들 것이라고 한다.
대형 마트 ‘탑스 마켓’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이런 움직임이 있다. 매월 4일에는 비닐봉지를 비치하지 않고 재생가능한 장바구니를 판매하는 것이다.
아직 Green Checkout 계산대는 사용되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 지고 더 자주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날이 와서 결국에는 비닐봉지 사용 시 사용료를 받거나 아예 비닐봉지가 없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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