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것을 두고 ‘한국인이 밥 먹기 전에 치르는 특별 의식’ 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도대체 밥을 언제 먹는 거냐며 남자들이 불평하는 장난 섞인 볼멘소리도 있었다.
요즘도 나는 가끔 밥 먹기 전에 내가 뭘 먹었는 지 기록을 하기 위해 찍기도 하고, 요리가 잘 됐을 때는 나중에 또 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여행 때는 특이한 음식이나 보기에 근사한 음식은 꼭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특별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할 경우에는 음식과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밥을 먹는다.
하지만 찍는 건 한 두장이지, 사진을 찍기 위해 10분-20분을 소요하진 않는다.
메뉴 사진 찍는 것도 아닌데 누가 10분, 20분을 써가며 음식 사진을 찍냐?
태국 사람들이다 J
정확히 말해서는 ‘음식’ 사진이 아니라 ‘음식 앞에 있는 나’의 사진이다.
내가 지금 얼마나 괜찮은 식사를 앞두고 있는 지, 얼마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을 할 예정인 지, 그리고 난 얼마나 예쁘고 쿨한 지, 온갖 표정을 짓고 포즈를 취하며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 물론 누가 보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스테이크를 시키고, 스테이크가 나와서 먹기 시작할 때까지 사진인 지 영상인 지를 찍던 여자.
음식사진만이 아니다.
태국 사람은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남이 나를 보는 눈길, 남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으로 공유를 해서 시선과 좋아요를 받는 것을 즐긴다.
경제사정으로 인해 여행을 자주 할 수 없는 태국인들에게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다.
공항에 가면 여권, 티켓과 함께 수십장의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치앙라이에 다녀왔을 때는 명품(?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가방을 자랑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가방이 뒤에 보이도록 놓고 한시간이 넘도록 셀카를 찍는 여자도 있었다.
게이트 앞 수많은 대기인원 앞에서도 아랑곳 않고 끊임없이 가방 위치와 가슴 부분을 조정하던 여성 ㅎㅎ
여기에서 끝난다면, 본인만 즐거우면 됐으니 상관하지 않겠지만, 태국 사람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가끔 기분 나쁠 때도 있다.
방콕에 이주 한 지 얼마 안 돼서 한동안 집 근처에 자주 가던 과일 가게에서 저녁 대신 망고, 파인애플, 드래곤프루트 (용과) 등을 사서 먹은 적이 있다. 딴에는 다이어트도 되겠지 생각했으나, 과일에 당이 많아 설탕 섭취하는 것과 같이 살이 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연에서 온 당분은 괜찮아!”라고 혼자 결론을 짓고 열심히 먹은 결과 굉장하게 살이 쪄 버렸다.
어느 날 어김없이 집에 가는 길에 과일을 사려고 하자, 과일 행상 아주머니가 몇 달 새 살이 쪄 버린 내 모습을 보고선 달라는 과일은 주지 않고 계속 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못 알아듣자 옆의 반찬집 아저씨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통역해 주었다.
“처음에 왔을 때보다 살이 많이 쪘는데, 자기 과일을 먹고 그런 것 같아서 걱정된대”
....
장사하기 싫은가?....
앞에서는 별 일 아니라며 표정관리를 했지만 ‘오지랖도 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과일을 자제해서 먹기 시작한 것은 감사하다.
셀카뿐 아니라 영상통화도 우리가 사용하는 빈도보다 더 많이 사용된다. 보통 연락처 교환 시 일반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라인앱(Line) 아이디를 교환하다 보니, 전화도 라인 전화로 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음성통화가 아니라 영상통화를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택시 운전사도 손님이 있건 없건 영상통화를 받고, 자기가 누굴 태워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은 어디인 지 꼬박꼬박 전화를 건 사람 (대부분 부인) 에게 자세하게 보고한다.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 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 영상통화에 내가 나오는 것이 불쾌하면 내가 자리를 피하거나 고개를 돌려야 한다.
아침 만원 지상철(BTS/비티에스)에서 사람들이 코를 박고 열중해서 보고 있는 것이 무엇 인 지는 방콕에 와서 하루만 있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모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뉴스 피드다. 휙휙 엄지를 내려가며 가끔식 누군가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2-3초 남짓이다.
언젠가 다니는 교회에서 ‘한달 간 SNS 사용하지 않기’ 라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하자 바로 그 자리에 있던 태국인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페이스북을 켜지 않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며 노력해보겠지만 참 힘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많은 태국인이 웃으며 끄덕끄덕거렸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태국인이 프로젝트에 실패했을 것이다.
태국인에게 기본적으로 잠재된 관음증 때문에 타인에게 더 자신의 인생을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상관관계가 그려진다. 이 관음증과 허세가 수레바퀴처럼 맞물려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이다.
태국에서 사업을 할 생각이라면 이러한 태국 사람들의 심리와 생활패턴을 잘 이용해 마케팅을 할 수 있겠다. 태국인 여자친구를 사귈 생각이라면 우선 기쁘게 그녀의 사진 기사가 될 각오를 하고, 어딜 가든 인생샷을 찍어줄 수 있는 스킬을 기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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