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살다보면 여행으로 왔을 땐 전혀 느낄 수 없는 ‘빡침주의 사건’들이 참 많다.
한국에서는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을 태국에서는 너무나 경험하기 힘들다.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태국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부터였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위해 계산대로 향한 나는, 두 개의 계산대에서 이미 계산 중에 있던 사람들 중 먼저 자리가 비는 곳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그들의 뒤에 떨어져,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상식적이게도 이렇게 중립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왼쪽 사람이 먼저 계산을 마치고 나갈 때가 되어 그쪽에서 계산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한 태국 남자가 그 사람의 바로 뒤에 서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계산을 마친 사람이 나가자 자기 물건을 계산대에 쏟아버렸다.
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은,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을 알았던 직원도 내 존재를 철저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앗, 저 분이 먼저 오셨어요” 라고 말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던 내가 멍청이가 돼 버린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니 잘못이지’ 라는 비아냥의 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이없어하며 혀를 차는 내 모습을 봐 주는 이가 없어 나만 머쓱해 질 뿐이다.
비좁은 편의점 계산대의 특성상, 4대 정도 계산기가 있는 편의점의 경우에는 비는 계산대가 있더라도 뒤에 사람과 물건으로 꽉 찬 편의점에서는 줄 서 있는 사람은 이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렇더라도 직원이 “계산해 드릴게요”라며 줄 서 있는 사람을 부르는 경우는 없다. 만약 나는 3,4번째로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산대가 빈 것을 알고 방금 들어온 사람이 거기서 계산을 하더라도 직원은 먼저 온 손님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큰일 날 테지만, 화를 잘 내지 않는 태국인의 특성상 이런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홧병이 나는 것은 내 몫이다.
인터넷 쇼핑은 복불복이다. 운이 좋으면 주문한 물건이 오지만, 운이 나쁘면 주문한 물건의 옵션에도 없던 전혀 다른 물건이 도착한다.
쇼핑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물건이 잘못 왔다고 얘기하니 곧바로 “취소하시겠어요?”라고 대답이 돌아온다.
나 : “아뇨, 왜 취소를 해요. 제대로 된 물건 배송하고 이거 도로 가져가세요”
직원 : “그렇게 안돼요. 취소하고 환불 요청하세요. 환불 요청하는 양식을 인쇄해서 수기로 작성한 후 스캔해서 저희한테 보내시고, 물건은 직접 우체국에 맡기세요."
??? 저기요???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었다. 아니, 돈 벌기 싫나? 그래, 우선 재배송이 안된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잘못 된 물건의 취소와 환불을 억지로 해야한다면 적어도 자잘한 일처리는 잘못한 쪽에서 직접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 수고를 내가 감내해야 하죠??”. 그러자 한참 뒤에 “그럼 저희가 가지러 갈게요” 라는 답이 돌아왔고 환불까지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안 되는 일도 아니었는데 처음부터 비상식적으로 응대했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났다. 그 이후로 인터넷 쇼핑몰은 가끔 시세 참고용으로나 들여다 본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아…죄송합니다. 그 메뉴는 이미 재료가 다 소진됐어요.” 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손에 꼽는다. 하지만 태국에선 다르다. 재수가 없으면 밖에서 하루에 세 끼를 먹어도 세 번 다 “마이 다이 (안돼요) / 마이 미 (없어요)” 라는 답을 들을 것이다. “쏘리”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거의 들을 수 없을 것이다 ㅎㅎ
여러가지 메뉴를 시킬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문한 음식이 아닌 엉뚱한 것이 나올 때도 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은 채 계산서에는 그대로 청구돼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컴플레인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한국처럼 서비스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해서는 안된다. 방콕이라면 가끔 ‘에이 재수없이 걸렸네’라는 표정을 짓는 직원도 있고, 대부분 심드렁하게 핸드폰이나 만지고 있다가 어그적어그적 걸어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정정을 해 주고 “하하 쏘리” 한번 던지고 말아버릴 테니까.
상식, 융통성, 빠릿한 움직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나라 서비스에 익숙해 져 있다보니, 이런 “태국짓”이 생길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하지만 나도 살아지나보다. 이젠 줄을 서 있다가도 혹시 비어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창구는 없는 지, 메뉴를 주문하기 전에 재료가 있는 지 없는 지 물어본다. 태생이 ‘좋은 게 좋은’ 태국 성격이라면 태국에서 살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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